2021년 07월 27일 화요일
[녹]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입당송 시편 68(67),6-7.36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며 말씀하시곤 하셨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사십 일을 지내면서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며,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33,7-11; 34,5ㄴ-9.28
화답송시편 103(102),6-7.8-9.10-11.12-13(◎ 8ㄱ)
복음 환호송
복음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13,36-43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2
마태 5,7-8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코로나 시대에 생긴 ‘살고픔’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먹지 못하면 배고픔을 느끼듯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서 느끼는 ‘살고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나 인사 나누고, 서로 안아 주고 눈을 맞추며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해 주는 것을 그리워하는 살고픔의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당 소임을 맡지 않고 있는 사제에게도 신자들에 대한 살고픔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과 고민을 공유하고 많은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같은 것을 보고 살아간다는 기쁨과 위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바로 신자들에 대한 살고픔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신자들에게 사제는 어려운 사람입니다. 친해지고 싶지만 언제나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존재지요. 그것은 존경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존재가 초라하게 느껴져 다가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한 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접근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 봉사 등 어떠한 계기로 만남이 잦아지고,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제에 대한 거리감은 점차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도 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고, 그분의 말씀에 힘과 권위가 있어 일반 사람들은 그분께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뵐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밭의 가라지에 대한 비유 말씀을 설명해 달라고 거리낌 없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 일이 제자들에게는 일상과도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그분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그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이 묻게 되고 더 자연스러워지고 더 친근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려고 구약에서 성막을 만든 것처럼, 거룩하신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높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알게 되고 친근해집니다.
예수님에 대한 살고픔을 가지십시오. 늘 그분 가까이에서 그분과 함께 지내십시오.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알아가고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예수님에게서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