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7월 31일 토요일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에스파냐 칸타브리아의 로욜라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깨닫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창설하여 오랫동안 총장직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였다.
입당송 필리 2,10-11
본기도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뒤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인 희년으로 선언하고 해방을 선포하라고 하신다(제1독서). 헤로데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맹세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건네준다(복음).
제1독서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25,1.8-17
화답송시편 67(66),2-3.5.7-8(◎ 4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5,10
복음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14,1-12
예물 기도
영성체송 루카 12,49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생각 가운데 언제나 내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님을 인정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그 의견들을 절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다 보면 다툼도 있고, 공동체에 분열도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양보하고 한 발 물러서서 서로 타협하고 절충점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타협은 그렇게 각자의 것을 내어놓는 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절대 양보하지도, 물러서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예수님의 가치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타협하는 헤로데 임금과 타협하지 않는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인륜과 가족에 대한 사랑 앞에서 헤로데는 타협합니다. 또한 요한의 목숨 앞에서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힘과 권력에 타협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과 가치, 신념과 믿음 앞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세상의 가치와 타협합니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은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타협하지 않았고 국가의 절대 권력이나 무력과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기나 부와 명예와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양보하고 절충하면서 타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만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 앞에 중립이 없듯이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아파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 돈과 경제적 원리 앞에서 하느님의 뜻을 양보하고 타협할 수 없습니다. 지금 무엇인가에 타협하고 있습니까? 스스로에게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