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12일 목요일
[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또는
[백]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입당송 시편 74(73),20.19.22.23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계약 궤를 앞세우고 요르단을 건너라고 하시며, 온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너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시며 빚을 탕감받은 악한 종의 비유를 드시고는,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3,7-10ㄱㄴㄹ.11.13-17
화답송시편 114(113 상),1-2.3-4.5-6
복음 환호송시편 119(118),135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18,21─19,1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요한 6,5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베드로 사도가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예수님께 여쭙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한 번도 어려운데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니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예수님께서는 다음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종들과 셈을 합니다. 임금은 일만 탈렌트(1탈렌트=6천 데나리온)라는 엄청난 빚을 진 종의 부채를 탕감해 주고 그를 놓아줍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자마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1데나리온=당시 노동자의 일당)을 빚진 동료에게 빚을 갚으라며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임금이 이 종을 불러들여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느냐?”
이 비유는 우리 각자에게 분명한 가르침을 줍니다. “자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것일 뿐 아니라, 참된 하느님 자녀의 식별 기준이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단언하십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먼저 자비를 입었으므로, 우리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자비의 얼굴」, 9항). 이 “하느님의 자비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실재입니다. 이는 부모가 자기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녕 애끊는 사랑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랑은 온유한 배려와 너그러운 용서가 넘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치는 사랑입니다”(「자비의 얼굴」, 6항).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살아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받은 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때입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인간이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를 묻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