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19일 목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또는
[백] 성 요한 외드 사제
입당송 시편 84(83),10-11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입타는 암몬 자손들을 쳐부수고 돌아와 주님께 서원한 대로 딸을 번제물로 바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길 수 있다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저를 맞으러 제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을 주님께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11,29-39ㄱ
화답송시편 40(39),5.7-8ㄱㄴ.8ㄷ-9.10(◎ 8ㄴ과 9ㄱ 참조)
복음 환호송시편 95(94),7.8
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22,1-1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요한 6,5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십여 년 전 위령의 날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에게 인사를 더 잘하고 싶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거울 보고 웃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반갑게 신자들을 만날 생각을 하며 식당 쪽으로 갔는데,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복잡해서인지 막상 인사를 건네는 분이 없었습니다. 어깨를 부딪혀도 가벼운 눈인사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길을 내려와 마당에 이르니 저쪽에서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국밥을 퍼 주고 있던 몇몇 신자가 국자를 내팽개치고 달려와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신부님, 제 딸이 시집을 갔어요.” “신부님, 남편이 냉담 중이에요.” 하며 제 어깨를 쓰다듬고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러고는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다시 국밥을 퍼 주러 뛰어갑니다. 그분들은 첫 본당 신부 시절에 만난 신자들이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어깨를 스친 신자들은 고개만 끄덕하고, 국밥을 퍼 주던 신자들은 멀리까지 달려와 인사를 하는가?’ 그러다가 ‘아, 사람과 사람이 맺은 인격적 관계의 깊이 때문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신부라도 서로 인격적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으면 데면데면하지만, 아픔과 기쁨을 함께한 사람을, 그런 신부를 만나면 그리 반가운 것이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혼인 예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힘들 때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 뒤 그분에게서 힘과 지혜와 용기를 얻어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던 일. 내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닮고자 나 또한 내 것을 내어 주고, 그래서 그 사랑이 되고자 한 노력들 ……. 그러한 노고의 땀방울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하느님과의 친교의 깊이가 바로 우리가 마련해야 할 혼인 예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