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16일 수요일
[녹]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31(30),3-4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야고보는, 말씀은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으므로 이를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제1독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눈먼 이를 낫게 해 달라고 청한다. 주님께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보게 된다(복음).
제1독서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1,19-27
화답송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1ㄴ)
복음 환호송에페 1,17-18 참조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8,22-26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8(77),29-30 참조
요한 3,16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어느 눈먼 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유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점이 좀 특이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눈먼 이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 뚜렷하게 보지 못하자 다시 두 눈에 손을 얹으셨고, 그제야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눈먼 이의 치유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어서 예수님께서도 애를 좀 먹으신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보다는 그의 시력이 단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문맥 안에서 바라볼 때, 제자들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곁에서 쭉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그분을 아직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어제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꾸짖으셨지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마치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가 예수님의 첫 번째 시도로 어렴풋이 보게 된 이야기에 빗대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눈먼 이가 뚜렷이 볼 수 있도록 다시 눈에 손을 얹으셨듯이, 제자들의 몰이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올바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보고는 있지만, 아직 어렴풋이 보는 상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뚜렷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당신 손을 우리의 두 눈에 얹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