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19일 토요일
[녹] 연중 제6주간 토요일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31(30),3-4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사람은 절제할 수 없는 혀로 큰 불을 낼 수 있다. 야고보는 이를 불의의 세계로 정의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의 부활을 드러낸다.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앞으로 예수님께서만 권위를 가지실 것임을 보여 준다(복음).
제1독서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3,1-10
화답송시편 12(11),2-3.4-5.7-8(◎ 8ㄱ)
복음 환호송마르 9,7 참조
복음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9,2-13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8(77),29-30 참조
요한 3,16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들 앞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십니다. 엘리야와 모세도 그분 곁에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서 그들에게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합니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베드로의 이 제안은 이스라엘의 초막절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보호 아래 광야에서 지냈던 천막생활을 기억하는 초막절은, 마지막 때가 오면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초막에서 살게 되리라는 종말론적인 기대도 반영하는 축제였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왜 초막을 짓겠다고 하였는지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눈부신 광경을 보고 지금이 바로 그 종말의 때임을 직감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수난을 강조하셨는데(마르 8,31 참조), 종말의 때에 이르기는커녕 아직 수난의 때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눈앞의 놀라운 광경에 정신이 팔려 이를 잊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한 번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음에도(마르 8,33 참조) 여전히 수난과 십자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지 않은 모습을 보며,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이 가르침을 멀리하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영광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서 드러내신 영광은 수난의 여정 끝에 궁극적으로 맞이할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묵상하며, 그분께서 초대하신 십자가의 길이 결국 패배가 아닌 승리의 여정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