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20일 일요일
[녹] 연중 제7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7주일입니다. 지극히 인자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외아드님을 통하여 조건 없는 사랑을 밝혀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도 축복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시편 13(12),6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다윗은 사울에게, 주님께서 사울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지만, 자신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흙으로 된 첫 인간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 주셨지만, 저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26,2.7-9.12-13.22-23
화답송시편 103(102),1-2.3-4.8과 10.12-13(◎ 8ㄱ)
제2독서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5,45-49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6,27-38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교회가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기며 살아가게 하시어, 이 시대에 참된 사랑의 본보기가 되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정치인들에게 주님의 정의를 심어 주시어,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국가의 평화와 국민의 복지를 위하여 일하며, 모든 이가 편안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게 하소서.
3. 졸업생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새로운 환경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두려움을 이겨 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희망 가득한 날들을 맞이하도록 은총 내려 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된 행복을 주시는 주님, 저희 지역 사회의 모든 이가 이웃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에 더욱더 민감하게 하시어, 서로 배려하고 다 함께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영성체송 시편 9,2-3
요한 11,2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땅에서 온 첫 인간 아담과 달리 하늘에서 오신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듣고 있으면, 이 계명들을 지키며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면 속옷까지 내주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怨讐)란 자기나 자기 집안에 어떤 중대한 해를 끼쳐 깊은 원한이 생긴 사람을 뜻할 텐데, 이런 자를 우리가 어떻게 용서까지는 해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말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비상식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근거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지니신 자비와 사랑을 제시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곧 하느님께서 그러하시기에 그분의 자녀이기를 바라는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 자체로 정의한 요한 서간의 저자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느님께서 본디 그러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비와 사랑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그분의 속성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계명들은 사실 ‘하느님’의 행동에서 그 주체가 ‘우리’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께 원수와 다름없는 이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당신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인자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오늘 계명은 당신 자녀들이 당신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호소인 셈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신앙인들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이고 또 닮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를 닮으려는 자녀의 노력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겨자씨만큼 작은 우리의 사랑을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는 나무만큼 성장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