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 23일 월요일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교육 주간)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06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해마다 ‘청소년 주일’(5월 마지막 주일)을 포함하여 그 전 주간을 ‘교육 주간’으로 정하였다.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기에 가톨릭 교육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이다.
입당송 로마 6,9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일행이 필리피에서 복음을 전할 때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진리의 영을 보호자로 약속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16,11-15
화답송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복음 환호송요한 15,26.27 참조
복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15,26─16,4ㄱ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요한 20,19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고들 말합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종교가 있고, 사람들은 참 다양한 신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신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세상은 늘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데, 실제 모습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류 역사의 책장을 조금만 뒤적여 보아도 신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과 살인을 너무도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저마다 또한 종교마다 믿고 따르는 신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믿는 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믿는 신은 곧바로 적이 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종교는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이단이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서로 죽여 왔고, 지금도 죽이고 있습니다.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오늘 복음의 한 구절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예수님을 죽였고, 누군가는 그분의 제자들과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으며, 또 누군가는 그리스도를 살해한 사람들이라는 죄명으로 유다인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와 신을 절대화하는 순간, 그는 신의 적대자가 됩니다.”
우리 또한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모습이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만들어 낸 하느님과 신앙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상대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참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하루는 내 하느님을, 내 신앙을, 내 교회를 유연한 사고로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