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10일 일요일
[녹] 연중 제15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입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사랑의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려 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어렵고 힘든 형제들을 돕도록 합시다.
입당송 시편 17(16),15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모세는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그들 가까이, 곧 입과 마음에 있기에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에 관한 비유를 드시며,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하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그 말씀이 너희에게 가까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30,10-14
화답송시편 69(68),14와 17.30-31.33-34.36ㄱㄴ과 37(◎ 33 참조)
19(18),8.9.10.11(◎ 9ㄱㄴ)
제2독서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1,15-20
복음 환호송요한 6,63.68 참조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5-37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영원한 생명의 길을 따르는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마음과 목숨을 다하고 힘과 정신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2.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위하여 힘쓰고 있는 우리나라를 굽어보시어, 모든 국민이 화해와 일치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은총 베풀어 주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의 주님, 오랜 시간 감염병에 시달리고 있는 저희를 보살펴 주시어, 더 이상의 확산이 없게 하시고,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건강을 되찾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주님께 영원한 생명을 청하는 저희 본당 공동체를 굽어보시어, 주님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는 가운데 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널리 전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3 :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영성체송 시편 84(83),4-5 참조
요한 6,5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곤경에 놓인 이웃을 보고,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린 사제나 레위인입니까? 아니면 가엾은 마음이 들어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입니까?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어느 겨울,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가던 길에, 술에 취해서 쓰러져 있는 행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괜한 참견으로 일정에 방해를 받을까 봐 안타까운 마음만 지닌 채 그냥 지나치려는데, 오지랖 넓은 동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세요. 경찰서죠? 출동 부탁드립니다.”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는 뜻인데, 통념으로는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참견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마리아 사람에게 꼭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사마리아 사람을 본받으려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왠지 사제와 레위인이 이해되고 때로는 그들을 변호하고 싶어집니다. 그때는 하느님께 드릴 제사와 성전 봉사 때문에 너무 바빴을 것이고, 시간이 여유로웠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요. 과연 그러하였을까요?
자신이 이르고자 하는 곳을 향하여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점점 지나치는 것이 많아지고, 참견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많아집니다. 손수건을 떨어뜨린 앞 사람에게도, 어느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말에도,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의 숨 가쁜 소리에도 도무지 무심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잠시 멈추어 서고, 그냥 지나쳐 가다가도 마음이 쓰여 되돌아가는 선택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을 위한 오지랖’,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