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17일 일요일
[녹] 연중 제16주일 (농민 주일)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1995년 추계 정기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날 교회는 농민들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며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갖게 살도록 이끈다. 각 교구에서는 농민 주일에 여러 가지 행사를 마련하여 농업과 농민의 소중함과 창조 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며 농민 주일입니다. 지혜롭고 자애로우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에 모이게 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형제들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섬기도록 합시다.
입당송 시편 54(53),6.8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환대를 받으시고, 이듬해 그의 부인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드러났는데, 그 신비는 그리스도이시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보시고,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리,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18,1-10ㄴ
화답송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1ㄱ)
제2독서
<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이제는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1,24-28
복음 환호송루카 8,15 참조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10,38-42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 모여 주님을 찬미하는 교회를 이끄시어, 염려와 걱정은 모두 주님께 맡기고, 주님 말씀을 귀담아들으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2. 입법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로우신 주님, 법을 만드는 이들의 양심을 일깨워 주시어, 힘없는 이들을 살리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이 공정히 실행되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불의의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소서.
3. 농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무더위에도 농사일에 정성을 다하는 농민들을 지켜 주시어, 언제나 건강하게 일하며, 나아가 그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생명이신 주님, 지역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저희를 이끌어 주시어,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고 많은 이의 수고에 감사하며, 창조자이신 주님을 다 함께 찬미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영성체송 시편 111(110),4-5
묵시 3,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마르타처럼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고 많은 일을 염려하며 걱정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잠시라도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특별한 묵상 거리를 소개합니다.
첫째, 마음의 과녁은 언제나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를 묘사하는 단어는 “듣고 있었다”입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 제자처럼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반면 마르타를 묘사하는 단어는 “분주하였다”입니다. ‘사방에서 마음을 끌어당김’을 뜻합니다. 예수님 앞에 머물러 있더라도 주변에 마음을 빼앗기면 분주할 수 있고, 반대로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들을 수 있습니다. 머무름과 분주함을 가르는 것은 태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아이를 돌보고, 일하고 사랑하며,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은 그 일들 안에서 예수님이라는 과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둘째,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행동이 배제된 들음은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을 좇기 쉽고, 반대로 들음이 없는 행동은 자신을 드러내는 수준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마리아와 같이 말씀을 듣는 삶, 마르타와 같이 봉사하는 삶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말씀 안에 머물 줄 알아야 하고, 말씀 안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은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활동의 진정성을 가지게 해 줍니다. 마리아와 마르타, 그리고 예수님께서 함께하셨던 그 공간이 오늘 우리 마음과 삶 안에서 체험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