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1일 월요일

[녹]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
2,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2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31(130),1.2.3

◎ 주님, 제 영혼을 당신의 평화로 지켜 주소서.
○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나이다. 제 눈은 높지도 않사옵니다. 감히 거창한 것을 따르지도, 분에 넘치는 것을 찾지도 않나이다. ◎
○ 오히려 저는 제 영혼을, 다독이고 달랬나이다. 제 영혼은 마치 젖 뗀 아기, 어미 품에 안긴 아기 같사옵니다. ◎
○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

복음 환호송요한 8,31-32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달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제물을 거룩한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또는>
요한 6,57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살아 계신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만일 누군가에게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누구를 초대하고 싶은지 떠올려 봅시다. 그동안 이래저래 신세를 져 온 은인들이 아닐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움을 준 형제나 친척, 업무와 관련된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직장 동료,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 주고 조언해 준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한편 내가 잘 보여야 할, 또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 상사, 영업에서 매우 중요한 고객, 존경하는 스승님, 그 밖에도 사회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위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과 이루는 관계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상호적 관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받았으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또 무엇을 받을 기대감에 먼저 주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그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일 뿐, 그에게 무엇을 주거나 베풀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우리식으로 바꾸어 봅시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보답이 예상되는 초대는 하지 말고, 오히려 보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이들, 곧 ‘나와 상관없는’ 이들을 초대하라고 주문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면, 보답이 예상되는 초대는 그 보답을 받음으로써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보답은 더 크고 유익하므로, 차라리 그것을 얻고자 현세의 보답을 포기하는 편이 훨씬  복되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베푸는 자선이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님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느님 나라의 보상 점수는 그렇게 계속 쌓여 갑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