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8일 목요일

[녹]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25(24),16.18 참조

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6,10-11; 7,1.9-17; 8,4-9ㄱ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 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
라구엘은 “형제들, 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 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 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9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
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
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형제야, 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
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얘야, 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
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
그러니 얘야, 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
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 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
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
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그리고 얘야, 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
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
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
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
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 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
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 일어나구려.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5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6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
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8 그들은 “아멘, 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9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28(127),1-2.3.4-5(◎ 1ㄱ 참조)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복음 환호송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의 사랑을 믿으며 거룩한 제대에 제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7(16),6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또는>
마르 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를 성자의 살과 피로 기르시고 주님의 성령으로 다스리시어
저희가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에 등장하는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적대자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이례적으로 예수님께 호감을 보이는 율법 학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가는 모습도 그러하고(“예수님께서 대답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께 다가와”[오늘 복음에서 생략된 구절]),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도 그러합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께서 이례적으로 율법 학자에게 보내는 찬사의 말씀도 듣게 됩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많은 율법 학자가 예수님을 불편하게 여기고 적개심을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촌뜨기 나자렛 사람이 감히 전문가들인 자기들 앞에서 율법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이 그들은 영 못마땅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교육을 결코 받았을 리 없는 자가 그토록 중요한 안식일 법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도무지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 학자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비범함을 알아본 그는 율법 학자로서 평소 품고 있던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 질문은 당대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논의되던 주제였습니다. 따라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한 셈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율법의 밑바탕에 놓인 핵심을 짚어 주시는 예수님의 대답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수긍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결국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은 우리에게도 많습니다. 그 자체로 좋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잘못된 선입견을 거치게 되면 나쁘고 추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다가가려면 먼저 그것을 가로막는 장막을 걷어 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찬사를 얻어 낸 율법 학자처럼, 그 장막을 과감히 걷어 낸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속한 좋고 귀한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