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21일 수요일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실망하고 선교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리하여 열일곱 살 때 재산 상속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인은 1591년 로마 전역에 흑사병이 번졌을 때 그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다가 감염되어,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신학생 신분으로 선종하였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께서는 그를 시성하시며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셨다.
입당송 시편 24(23),4.3 참조
본기도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9,6ㄴ-11
화답송시편 112(111),1ㄴㄷ-2.3-4.9(◎ 1ㄴ)
복음 환호송요한 14,23 참조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6,1-6.16-1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8(77),24-2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합니다. 눈치를 보는 것은 관계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행동이고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눈치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사회생활을 잘하고 못하고의 여부가 판가름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치를 너무 본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이는 남들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질지를 지나치게 염려하는 성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의로운 사람, 성실한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때로는 거짓된 행동으로 자신을 포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그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칭찬을 받으려고,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려고, 겉으로만 그런 척 행동하는 사람들의 전형을 봅니다. 스스로 나팔을 불며 자선 행위를 동네방네 떠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회당이나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자들, 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단식하며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노력 대신에, 하느님께 보이려는 노력을 하도록 주문하십니다. 그것은 반대로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행동들과 연관됩니다. 자선을 베푼 사실을 숨기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며, 머리에 재를 뿌리는 대신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단식하는 티를 내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진정한 자선이요 기도며 단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며,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습니까? 이를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하느님께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잘 보이고 싶은 욕구도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 자문하여 보았으면 합니다. 만일 그러한 욕구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면, 우리는 티 내지 않는 선행을 실천할 동력을 충분히 가진 것입니다. 사람들 눈만 의식하지 말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눈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눈치도 살피는 신앙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