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17일 목요일

[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74(73),20.19.22.23 참조

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3,7-10ㄱㄴㄹ.11.13-17
그 무렵 7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너를 높여 주기 시작하겠다.
그러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너와도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8 너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에게, ‘요르단 강 물가에 다다르거든
그 요르단 강에 들어가 서 있어라.’ 하고 명령하여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였다.
“이리 가까이 와서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10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일어날 이 일로써,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에 계시면서,
가나안족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시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1 자, 온 땅의 주인이신 분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
13 온 땅의 주인이신 주님의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으면,
위에서 내려오던 요르단 강 물이 끊어져 둑처럼 멈추어 설 것이다.”
14 백성이 요르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천막에서 떠날 때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백성 앞에 섰다.
15 드디어 궤를 멘 이들이 요르단에 다다랐다.
수확기 내내 강 언덕까지 물이 차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물가에 발을 담그자,
16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어 섰다.
아주 멀리 차르탄 곁에 있는 성읍 아담에 둑이 생겨,
아라바 바다, 곧 ‘소금 바다’로 내려가던 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백성은 예리코 맞은쪽으로 건너갔다.
17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14(113 상),1-2.3-4.5-6

◎ 알렐루야.
○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야곱 집안이 낯선 말 하는 민족을 떠날 때, 유다는 그분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나라가 되었네. ◎
○ 바다가 보고 달아났으며, 요르단이 뒤로 돌아섰네. 산들은 숫양처럼 뛰어다니고, 언덕들은 어린양처럼 뛰놀았네. ◎
○ 바다야, 너 어찌 달아나느냐? 요르단아, 어찌 뒤로 돌아서느냐? 산들아, 어찌 숫양처럼 뛰어다니고, 언덕들아, 어찌 어린양처럼 뛰노느냐? ◎

복음 환호송시편 119(118),135

◎ 알렐루야.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주님의 자비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교회가 드리는 이 예물을 받아들이시어
저희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47(146─147),12.14 참조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또는>
요한 6,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진리의 빛으로 저희를 굳세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성경은 우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이를테면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집회 6,15-16)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좋은 친구를 잃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용서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됩니다. 실망과 배반의 고통이 너무 크고, 미움과 복수의 충동을 잠재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려고 하여도 그에게 예전처럼 온전한 신뢰를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런 어두움이, 마치 “족쇄와 쇠사슬로”(마르 5,4) 몸이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우리를 가두고 지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언제나)이 아니라 일흔일곱(또 언제나) 번까지라도”(22절)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로 청하는 바를 삶으로 옮기도록 초대하십니다. 곧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주님의 기도처럼 우리 친구와 형제들을 언제나 용서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이 요르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건너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의 중심인 계약의 궤가 가장 앞서 요르단강을 건너갑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우리의 노력과 힘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나되어 계시는 하느님의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형제를 용서하는 것도 우리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현존과 그분의 권능을 믿으며 끊임없이 청하여야 할 일입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의 궤를 지고 요르단강을 건넜던 것처럼 우리도 갚을 길 없는 큰 사랑의 빚을 지고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형제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우리를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도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