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17일 일요일
[녹] 연중 제24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주 하느님께서는 형제들을 용서하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잘못한 이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집회 36,21-22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27,30―28,7
화답송시편 103(102),1-2.3-4.9-10.11-12(◎ 8)
제2독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14,7-9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18,21-35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세상 속에서 고난을 겪는 교회를 보살피시어,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몸 바친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복음의 씨앗을 싹틔우고 풍성히 자라도록 힘쓰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이 나라의 정치인들을 굽어살피시어, 국민 생활의 안정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힘쓰며, 그 가운데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먼저 돌보는 의로움을 실천하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의 주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시어 아픔을 잊게 하시고, 환자를 돌보는 이들과도 함께하시어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며 부활의 희망으로 힘을 얻게 하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려는 저희 가정을 살펴 주시어, 믿음, 희망, 사랑의 삼덕을 굳건히 지키고 실천하는 신앙으로 주님의 참사랑을 온전히 드러내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7 : 그리스도의 순종과 우리의 구원>영성체송 시편 36(35),8
1코린 10,16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고 집회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분노를 품고서 어찌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웃을 용서하는 일이 주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전제로 선언됩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다음과 같이 청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이처럼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여야 할 당위성을 주님께 우리 죄를 용서받으려는 데에서 찾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자칫하면 하느님의 용서가, 우리의 선행으로 얻게 되는 보상이나 대가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오늘 복음의 비유는 오히려 우리가 용서받은 사실이 먼저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만 탈렌트를 임금에게 빚진 사람이 있습니다. 한 탈렌트도 노동자 하루 품삯(데나리온)의 육천 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인데, 무려 그 만 배에 해당하는 빚을 졌다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임금이 그 큰돈을 왜 빌려주었는지, 종은 그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 비유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전하여 주지 않습니다. 다만 놀라운 사실 하나를 간결하게 말할 뿐입니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전에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또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일일이 캐묻지 않으시고 그냥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용서는 어떠한 전제도 두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분의 자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용서를 받은 뒤에 보이는 태도입니다.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의 빚을 탕감하여 줄지, 아니면 그 빚을 갚으라고 성을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둘지 말입니다.
이웃을 용서하여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용서받은 체험과 그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입은 사람의 행동에 따라, 베푸신 자비를 다시 거두어들이실 수도 있는 분이심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