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연중 제24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주 하느님께서는 형제들을 용서하는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잘못한 이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을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집회 36,21-22 참조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27,30―28,7
30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28,1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2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3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4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5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6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7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03(102),1-2.3-4.9-10.11-12(◎ 8)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제2독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4,7-9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세상 속에서 고난을 겪는 교회를 보살피시어,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몸 바친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복음의 씨앗을 싹틔우고 풍성히 자라도록 힘쓰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이 나라의 정치인들을 굽어살피시어, 국민 생활의 안정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힘쓰며, 그 가운데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먼저 돌보는 의로움을 실천하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의 주님,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시어 아픔을 잊게 하시고, 환자를 돌보는 이들과도 함께하시어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며 부활의 희망으로 힘을 얻게 하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려는 저희 가정을 살펴 주시어, 믿음, 희망, 사랑의 삼덕을 굳건히 지키고 실천하는 신앙으로 주님의 참사랑을 온전히 드러내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가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7 : 그리스도의 순종과 우리의 구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더없이 사랑하시어
그리스도를 저희에게 구세주로 보내 주시고
죄 말고는 저희와 똑같은 처지에서 살게 하셨나이다.
그리하여 성자를 사랑하셨듯이 저희를 사랑하시고
저희가 순종하지 않아 죄를 지어 깨뜨린 계약을
성자의 순종으로써 다시 맺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36(35),8

하느님, 당신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또는>
1코린 10,16 참조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며, 우리가 나누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먹는 것이네.

영성체 후 묵상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고 집회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분노를 품고서 어찌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형제를 용서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제 생각대로 살지 않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웃을 용서하는 일이 주님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전제로 선언됩니다.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다음과 같이 청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이처럼 우리는 이웃을 용서하여야 할 당위성을 주님께 우리 죄를 용서받으려는 데에서 찾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자칫하면 하느님의 용서가, 우리의 선행으로 얻게 되는 보상이나 대가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오늘 복음의 비유는 오히려 우리가 용서받은 사실이 먼저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만 탈렌트를 임금에게 빚진 사람이 있습니다. 한 탈렌트도 노동자 하루 품삯(데나리온)의 육천 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인데, 무려 그 만 배에 해당하는 빚을 졌다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임금이 그 큰돈을 왜 빌려주었는지, 종은 그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 비유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전하여 주지 않습니다. 다만 놀라운 사실 하나를 간결하게 말할 뿐입니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전에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또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일일이 캐묻지 않으시고 그냥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용서는 어떠한 전제도 두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분의 자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용서를 받은 뒤에 보이는 태도입니다.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의 빚을 탕감하여 줄지, 아니면 그 빚을 갚으라고 성을 내며 그를 감옥에 가둘지 말입니다.
이웃을 용서하여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용서받은 체험과 그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를 입은 사람의 행동에 따라, 베푸신 자비를 다시 거두어들이실 수도 있는 분이심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