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2일 일요일
[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가 아닌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시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잔칫상에 앉는 합당한 준비로, 등잔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주님께서 오실 때에 서둘러 마중하여 혼인 잔치에 함께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입당송 시편 88(87),3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6,12-16
화답송시편 63(62),2.3-4.5-6.7-8(◎ 2ㄷ 참조)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4,13-18
4,13-14
복음 환호송마태 24,42.44 참조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25,1-13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백성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을 주님의 진리로 이끌어 주시고, 특히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들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교회와 사회 복음화에 힘쓰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남북 분단의 세월 동안 단절되고 대립하며 지내 온 이 겨레에 은총을 주시어,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며 대화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소서.
3. 수험생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혜의 샘이신 주님,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을 보살펴 주시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제까지 애써 준비한 것들을 아쉬움 없이 잘 펼쳐 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희 가정 공동체를 주님의 은총으로 이끌어 주시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참행복과 생명의 가치를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영성체송 시편 23(22),1-2
루카 24,3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지혜서 저자는,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지혜의 기름으로 등을 밝히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이번 주일 성경 말씀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종말’입니다. 제1독서 지혜서의 저자는 지혜를 의인화합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구약 전통에서 하느님 말씀인 ‘토라’(오경, 율법)는 후대에 ‘지혜’로 변경됩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던 유다인들의 전통이 ‘하느님-토라-지혜’ 순서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의인화된 지혜를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합니다(요한 1,1-18 참조). 참된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 뵙게 될 희망이 그리스도인의 종말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제2독서 테살로니카 1서에서 바오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세상을 떠난 교우들 때문에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이 위로 안에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종말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종말은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하라는 신앙의 권고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두려움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다리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재회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