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04일 월요일
[자]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입당송 시편 84(83),3
본기도
제1독서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7 참조).>5,1-15ㄷ
화답송시편 42(41),2.3; 43(42),3.4(◎ 42〔41〕,3)
복음 환호송시편 130(129),5.7
복음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4,24ㄴ-30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시편 117(116),1-2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 그 내용이 매우 훌륭하고 권위가 있어 모두 놀라는데, 오히려 그 경이로움이 예수님을 ‘환영받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가정 환경과 성장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고향 사람들은 그분에게서 놀라운 가르침이 나오자 이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알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믿는 이방인들’의 모습이 제1독서에 제시됩니다. 존경받던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불치병에 시달렸지만, 오랜 고통의 시간을 지나 결국 치유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요르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에 황당해하며 화를 내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부하들은 대범하게 권유합니다.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 말씀에 대한 단순한 믿음과 순명이 불가능한 치유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앎이 과도한 확신으로 왜곡될 때 주변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더구나 그 앎이 비교나 질투, 열등감을 기반으로 할 때 그 앎은 극단의 폭력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믿지 못함’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믿음’은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요르단 물은 나아만의 몸만 고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그분에 대한 진정한 앎(인식)은 그의 의식과 마음까지 낫게 하여 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