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4일 일요일
[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날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을 기념한다.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을 거행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영광스럽게 기념하는 한편, ‘주님의 수난기’를 통하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성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것은 4세기 무렵부터 거행되어 10세기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로 건너가는 파스카 신비에 동참합시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
제1양식: 행렬
<입당할 성당 밖의 작은 경당이나 적합한 장소에 모여 아래의 따름 노래를 하거나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따름 노래 마태 21,9 참조
◎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이스라엘 임금님, 높은 데서 호산나!
<사제의 권고가 끝난 다음>
╋ 기도합시다. …… 다스리시나이다.
◎ 아멘.
<사제는 말없이 나뭇가지에 성수를 뿌린다.>
복음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0<또는 요한 12,12-16>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행렬 시작 권고>
<행렬하면서 성가대와 교우들은 아래의 노래나 그리스도 임금님께 영예를 드리는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따름 노래 1 시편 24(23)
◎ 히브리 아이들이 올리브 가지 손에 들고, 주님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환호 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고*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 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 누구이신가?*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따름 노래 2 시편 47(46)
◎ 히브리 아이들이 옷을 길에 깔고 외치는 소리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경외로우신 분,* 온 세상의 위대하신 임금이시다. ◎
○ 그분은 민족들을 우리 밑에,* 겨레들을 우리 발아래 굴복시키셨네. 우리에게 상속의 땅을 골라 주셨네.* 사랑하시는 야곱의 영광을 주셨네. ◎
○ 환호 소리 가운데 하느님이 오르신다.* 나팔 소리 가운데 주님이 오르신다. 노래하여라,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노래하여라, 우리 임금님께 노래하여라. 하느님이 온 누리의 임금이시니,* 찬미의 노래 불러 드려라. ◎
○ 하느님이 민족들을 다스리신다.* 하느님이 거룩한 어좌에 앉으신다. 뭇 민족의 귀족들이 모여 와* 아브라함의 하느님 그 백성이 된다. 세상 방패들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은 지극히 존귀하시어라. ◎
그리스도 임금님께 드리는 찬가
○ 영광 찬미 영예 모두 주님께. 그리스도 임금님 구세주! 아이들의 환호 소리, 호산나, 호산나!
◎ 영광 찬미 영예 모두 주님께. 그리스도 임금님 구세주! 아이들의 환호 소리, 호산나, 호산나!
○ 이스라엘의 임금님, 다윗 임금의 빛나는 후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신 임금님. ◎
○ 하늘의 천사들이 모두 주님을 찬미하고, 인간과 피조물이 다 함께 주님을 기리나이다. ◎
○ 히브리 백성이 종려 가지 들고 마중 나가니, 기도와 서원과 찬미로 주님께 나아가나이다. ◎
○ 수난하실 주님께 찬미 예물 드리오며, 다스리는 임금님을 찬양 찬송 하나이다. ◎
○ 그 찬송 받으셨듯 저희 정성 받으소서. 온갖 찬양 받으시는 어질고 좋으신 임금님. ◎
<행렬이 성당 안으로 들어갈 때에 아래의 노래를 하거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다른 알맞은 노래를 부른다.>
◎ 주님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히브리 아이들이 생명이신 주님의 부활을 외쳤네.* 손에 손에 종려나무 가지 들고 부르는 노랫소리, “높은 데서 호산나!”
○ 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에, 백성이 예수님을 마중 나가네.
◎ *손에 손에.
제2양식: 성대한 입당
<성당 밖에서 행렬을 할 수 없을 때는 성당 안에서 중심 미사 전에 성대한 입당으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이때 신자들이 하는 따름 노래와 복음, 다른 알맞은 노래는 ‘제1양식: 행렬’을 참고한다.>
제3양식: 간단한 입당
<성대한 입당이 없는 미사에서는 간단하게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입당송 요한 12,1.12-13; 시편 24(23),9-10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50,4-7
화답송시편 22(21),8-9.17-18ㄱ.19-20.23-24(◎ 2ㄱ)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2,6-11
복음 환호송필리 2,8-9 참조
복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14,1―15,47
15,1-39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죽음을 무릅쓰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복음 선포를 위하여 언제나 용감히 나아가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국민을 섬기고자 애쓰는 정치인들에게 식별의 은총을 주시어,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우기보다 모든 이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굽어살피시어,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시며, 저희는 사순 시기의 정신을 올바로 실천하게 하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돌보아 주시어, 모든 이가 삶의 터전으로서 아끼며 가꾸게 하시고,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정겹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3 : 주님의 수난(성지 주일)>영성체송 마태 26,4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결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던 베드로 사도가 한 말입니다. 정말 우리 인간의 공로로는 주님과 화해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여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은총과 자비를 하느님께 겸손하게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는 그 시작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이라고 할 정도로 ‘예수님의 신원’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의 입을 통하여 이를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사실 이 고백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무력한 죽음’, 그러나 ‘무력한 죽음’을 통한 ‘영광’이라는 십자가 신학의 총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역설적 신비는 성주간 내내 좀 더 명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성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말씀은 이 십자가 사건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예수님의 사랑과 순명에 기초하였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죽기까지 순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라고 언급하고,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이것으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십자가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린 자리라고 고백합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엄청난 수난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지 황망해집니다. 어쩌면 답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촘촘히 드러나는 시간이니, 눈과 마음을 열어 그 사랑을 알아보면 됩니다. 우리가 금욕적 실행을 결심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결연한 사랑과 그 완성을 알아보고 그 사랑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면, 이번 부활 시기에도 우리의 신앙은 구체성과 깊이를 얻기 어려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