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23일 월요일

[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오상(五傷)의 비오 신부’로 알려진 비오 성인은 1887년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태어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풀리아의 산조반니 로톤도 수도원에서 사목적 열정으로 봉사 직무에 헌신하면서, 신자들의 영성을 지도하고 참회자를 화해시켰으며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보살피고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섬겼다. 그는 1918년부터 196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처를 온전히 몸에 지니고 고통을 느꼈다.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시성하셨다.

입당송 시편 132(131),9 참조

주님,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특별한 은총으로
거룩한 비오 사제를 성자의 십자가에 참여하게 하시고
그의 사제 직무를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우신 자비를 새롭게 베푸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를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시어
빛나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신다.>
▥ 잠언의 말씀입니다.
3,27-34
내 아들아, 27 네가 할 수만 있다면 도와야 할 이에게 선행을 거절하지 마라.
28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게, 내일 줄 테니.” 하지 마라.
29 이웃이 네 곁에서 안심하고 사는데 그에게 해가 되는 악을 지어내지 마라.
30 너에게 악을 끼치지 않았으면 어떤 사람하고도 공연히 다투지 마라.
31 포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길은 어떤 것이든 선택하지 마라.
32 주님께서는 비뚤어진 자를 역겨워하시고 올곧은 이들을 가까이하신다.
33 주님께서는 악인의 집에 저주를 내리시고 의인이 사는 곳에는 복을 내리신다.
34 그분께서는 빈정대는 자들에게 빈정대시지만
가련한 이들에게는 호의를 베푸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1ㄴ 참조)

◎ 주님, 의로운 이는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지내리이다.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 진실을 말하는 이, 함부로 혀를 놀리지 않는 이라네. ◎
○ 친구를 해치지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이라네. 그는 악인을 업신여기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중한다네. ◎
○ 이자를 받으려 돈놀이 않으며, 죄 없는 이를 해치는 뇌물 받지 않는다네. 이 모든 것 행하는 그 사람, 영원토록 흔들림 없으리라. ◎

복음 환호송마태 5,16 참조

◎ 알렐루야.
○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17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18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갈라 2,19-20)와 복음(마태 16,24-27)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 기도 

주님,
거룩한 신비로 복된 비오를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대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태 24,46-47 참조

행복하여라, 주님이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또는>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비오를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잠언에서는 오늘 독서와 같이 인과응보에 관하여 되풀이하여 말합니다.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고 강조하며,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갚음을 힘주어 말합니다. 잠언의 저자라도 현세에서 늘 정확하게 인과응보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결과는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잠언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지닙니다.
이스라엘의 성경 안에서도 이러한 가르침은 의문에 부쳐지고 이후에 욥기와 코헬렛 같은 책들에서 다른 측면들이 지적되지만, 그렇다고 잠언이 쓸모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고, 선과 악의 갚음이 현세에서 완성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이 행하는 선과 악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온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삶 안에서, 특히 현세의 삶 안에서 때로 의심스럽게 보이는 이 가르침을 어떻게 할까요? 정말로 현세에서 곧바로 선과 악에 대한 갚음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에는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악한 일을 할 때는 대개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합니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악을 행하는 것이 더 유익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합니다.
명백하여 보이지 않는 가르침,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너무 단순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잠언의 가르침은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어쩌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의로운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마음 안에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