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8일 토요일
[홍]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헤로데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정적들을 살해하는 잔인한 임금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 무렵 왕권에 위협을 느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이때 억울하게 죽은 아기들의 희생을 교회는 오래전부터 순교로 보고 기억해 오다가 중세 이후에는 더욱 성대한 축일로 지내고 있다. 아기 예수님을 대신하여 죄 없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1,5―2,2
화답송시편 124(123),2-3.4-5.7ㄷㄹ-8(◎ 7ㄱㄴ)
복음 환호송
복음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2,13-18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1 : 빛이신 그리스도>영성체송 묵시 14,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동방 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마태 2,4). 그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로 오신 그분을 경배하러 동방 박사들과 함께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탄생이 그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졌고, 결국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는 비극적인 일을 벌입니다.
헤로데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자신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질 하느님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그에게는 ‘하느님’이고 ‘구원’이었습니다. 헤로데는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기지 못하는 사람의 최후 모습을 잘 보여 줍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6,24).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하느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을 ‘주님’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주님’은 누구이신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를 멈추게도 하고 움직이게도 하는 것, 절대로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하게도 하고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실제 ‘주님’이십니다. 헤로데에게 그 주님은 ‘자신의 왕권’이었습니다.
“헤로데는 ……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2,16-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