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8일 수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9,6ㄴ-11
화답송시편 112(111),1ㄴㄷ-2.3-4.9(◎ 1ㄴ)
복음 환호송요한 14,23 참조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6,1-6.16-1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자기가 이룬 일을 널리 알리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에, 오늘 복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넘어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받을 상이 없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공공장소에서 기도하는 몇몇 바리사이인들의 행태에 빗대어 제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사실 신앙 실천의 기본이 되는 자선과 단식, 기도도 자칫 그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실행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기보다 ‘왜’ 하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선행이나 업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히 남이 알아주기를 바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일을 슬며시 암시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남의 평가에 나를 맡기는, 자유롭지 못한 마음의 표시입니다. 아버지께서 자애로운 눈길로 늘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믿는다면 다른 이의 시선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다정한 눈길 아래 나를 두고 그분의 따스한 마음에 다가가면 그만입니다.
나의 선행은 보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직 사랑을 목적으로 할 때 그 자체로 충분하고 진정성을 지닙니다. 선을 행하면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직 순수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상이 없다고 해도,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는 것이 이미 보상입니다. 사랑은 보상을 좇지 않으며, 사랑해서 받는 유일한 보상은 언제나 사랑 그 자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