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7일 화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8,1-9
화답송시편 146(145),2.5-6ㄱㄴ.6ㄷ-7.8-9ㄱ(◎ 1ㄴ)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5,43-4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모금하면서 ‘가난의 신학’을 펼친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복음적 가난의 본질을 잘 드러내 줍니다. 오늘 독서의 9절에서 ‘가난하게 된다.’라는 그리스 말은 구걸하려고 손을 내밀어야 할 정도의 절대적 가난, 곧 극빈을 뜻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그런 상태로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반대로 ‘부유하게 된다.’라는 그리스 말은 풍족함을 넘어서서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결국 당신의 부유와 우리의 가난을 스스로 맞바꾸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리스도교적 가난의 본질입니다. 재화를 나누는 것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궁핍한 이가 없게 하는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성금은 예루살렘 교회와 다른 지역 교회의 친교 표시요 도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가난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낮아지시고 가난해지신 그리스도의 신비”요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가난은 바로 복음 한가운데 있습니다. …… 여러분의 아주 큰 이 부유함이, 곧 열정, 애덕,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호주머니에 이르게 하세요. …… 신앙이 호주머니에 이르지 못하면 참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 그리스도교적 가난은 가난한 사람에게 나의 것을 주는 것인데, …… 그 가난한 사람이 나를 부유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가난한 사람이 나를 부유하게 할까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가난한 사람 안에 계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성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 2015.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