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21일 토요일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실망하고 선교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리하여 열일곱 살 때 재산 상속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인은 1591년 로마 전역에 흑사병이 번졌을 때 그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다가 감염되어,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신학생 신분으로 선종하였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께서는 그를 시성하시며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셨다.
입당송 시편 24(23),4.3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12,1-10
화답송시편 34(33),8-9.10-11.12-13(◎ 9ㄱ)
복음 환호송2코린 8,9 참조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6,24-3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78(77),24-2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걱정 자체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걱정들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섭리’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를 이런 무의미한 걱정에서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하늘의 새들, 들에 핀 나리꽃들, 그것들을 사랑스럽게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만들어 내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날마다 신경 쓰는 일들, 곧 먹고 마시고 입을 것들에 대한 염려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은 오늘도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며 이 말씀에 도전합니다. 어찌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토록 소중히 여기시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게 내버려두실까요? 이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분노 어린 물음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하는 물음입니다. 그에 대한 답은 어쩌면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마태 6,33)을 찾는 일에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드러내야 하는 나라이고, 그 나라의 바탕이 되는 ‘그분의 의로움’은 형제들을 돌보는 일도 포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실존적 문제나 고통에 직접 개입하시기보다 당신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에게 형제들의 목숨을 지키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줄 책임을 맡기십니다. 오늘 복음은 아버지의 섭리에만 의지하여 태평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다른 자녀들인 형제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수고를 하도록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섭리의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