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0일 수요일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나중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어,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두루 다니며 평화와 일치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153년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께서 시성하셨고, 1830년 비오 8세 교황께서 ‘교회 학자’로 선포하셨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참조).>9,6-15
화답송시편 21(20),2-3.4-5.6-7(◎ 2ㄱ)
복음 환호송히브 4,12 참조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20,1-16
예물 기도
영성체송 요한 15,9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포도밭 일꾼을 사려고 집을 나선 밭 주인의 이야기에 빗대고 있습니다(마태 20,1 참조). 그리고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20,16)라는 복음 마지막 절은 덧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19장 30절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비유에서는 포도밭 주인이 맨 나중에 온 일꾼들부터 맨 먼저 온 일꾼들까지 차례로 품삯을 주는데, 중요한 것은 모든 일꾼이 같은 액수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당시 마태오 복음사가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구체적 상황을 고려해 봅니다. 나중에 신앙을 받아들인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그들보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이 비유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 같은 금액의 품삯, 곧 하늘 나라를 보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한편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20,13)에서 “친구여”로 옮겨진 그리스 말은 가까운 벗이나 상대방을 점잖게 부를 때 쓰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에는 이 호칭이 세 번 나오는데, 모두 처신을 잘못한 사람, 곧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지만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과(22,12 참조), 스승을 배신할 유다를(26,50 참조) 부르시는 대목에 쓰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 “친구여”라는 부름은 묵상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워 다른 이에게 시기와 질투를 드러내지는 않나요? 하늘 나라의 혼인 잔치에 초대된 우리는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하고 있나요? 혹시 유다처럼 나의 명예나 이익만을 찾으며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