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6일 화요일
[녹]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입당송 시편 86(85),1-3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2,1-8
화답송시편 139(138),1-3.4-6(◎ 1)
복음 환호송히브 4,12 참조
복음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23,23-26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4(103),13-15 참조
요한 6,5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하였나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마치 자식을 품에 안은 부모처럼 신자들을 온화하게 대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그 내용도 중요하였겠지만, 전하는 방식도 중요하였을 것입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서간을 쓸 경우와 이방계와 유다계가 섞여 있는 경우, 같은 복음 내용이더라도 다양하고 저마다 적합한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선포는 내용과 형식에서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의 복음 선포 행위를 도구로 삼아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셨습니다. 이 점을 놓친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오류인 위선과 탐욕과 방종이라는 ‘독버섯’이 교회 안에 피어오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교회 활동을 할 때 하느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활동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봅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 마르 2,22; 루카 5,38)라는 예수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위대하고, 아무리 이상적이어도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변변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크고 작은 교회 활동 가운데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우리가 선택한 방식이 얼마만큼 하느님 뜻을 담아내고 있는지 겸허하게 돌아봅시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