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2일 금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또는
[백]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성명
입당송 시편 119(118),137.124
본기도
제1독서
<나는 전에 그리스도를 모독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1,1-2.12-14
화답송시편 16(15),1-2ㄱ과 5.7-8.11(◎ 5ㄱ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7,17 참조
복음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6,39-42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42(41),2-3
요한 8,1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우리는 저마다 지닌 신념과 판단 기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저마다 다를 수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뒷담화를 하거나, 지적하고 고쳐 주려는 상황에서 충돌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자기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고집합니다. 실제로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형제의 잘못이나 분명한 허물과 흠집을 뜻하는 “티”(루카 6,41)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형제의 잘못보다 더 큰 우리의 잘못, 곧 “들보”(6,41)를 보라고 하십니다. 그 들보는 무엇일까요?
저는 형제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형제의 잘못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 자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형제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그분을 닮은 이, 곧 사랑을 지닌 이만이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기에 사랑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잘못하고 있는 형제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 올바른 시선을 제시합니다. 분명 사도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의 잘못을 바라보시기보다 그를 이해하시며(“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1티모 1,13]) 심지어 그에게서 선함을 발견하는 눈길(“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1,12])을 지니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같은 사랑의 눈길로 우리 형제를 본다면, 그제야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고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