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7일 토요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입당송 시편 145(144),8-9
본기도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7,14-15.18-20
화답송시편 103(102),1-2.3-4.9-10.11-12(◎ 8ㄱ)
복음 환호송루카 15,18 참조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15,1-3.11ㄴ-32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루카 15,32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사람은 오감으로 세상을 인식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은 시각입니다. 눈은 빛을 감지하여 형태, 색깔, 거리, 움직임 등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보지 못할 때가 있는데 바로 주의력을 잃었을 때입니다. 이렇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부주의 맹시’라고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큰아들은 바로 이 부주의 맹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방탕하게 살다 돌아온 동생을 따뜻하게 맞이한 아버지에게 그는 분노하였습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염소 한 마리도 내주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였습니다. 질투와 서운함에 사로잡혀, 그는 집 안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의 눈에는 아마도 ‘잔치’가 보였을 것입니다.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며 춤추는 사람들, 살진 송아지로 차려진 풍성한 식탁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정작 보아야 할 것, 곧 ‘돌아온 동생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굶주림과 죄책감 속에 고개 숙여 뉘우치던 동생의 모습, 자비로운 아버지 품에 안겨 흐느끼던, 자신도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였던 사랑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이와 같은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정작 바라보아야 할 사람을 보지 못하고, 분노와 질투, 오해 속에서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올바로 바라보고 참되게 판단할 수 있는 눈을 청합시다. 바라는 것이 바뀌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