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2일 금요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사제 성화의 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예수 성심이 성체성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시작하여 점차 보편화되었다.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교회의 전례력에 도입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해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에 ‘사제 성화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또한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전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며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사제들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찾고자 애쓰시는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입당송 시편 33(32),11.19 참조
본기도
저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신 아드님의 성심을 보시고
저희에게 무한한 사랑을 인자로이 베푸시니
저희가 그 성심을 정성을 다하여 공경하며
마땅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선택하셨다.>7,6-11
화답송시편 103(102),1-2.3-4.6-7.8과 10(◎ 17ㄱㄴ)
제2독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4,7-16
복음 환호송마태 11,29 참조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11,25-30
예물 기도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4 :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예수 성심 대축일)>영성체송 요한 7,37-38 참조
요한 19,3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 같은 우리에게 드러내신 하느님의 선한 뜻을 깊이 새깁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십니다. 이 감사의 내용은 역설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을”(마태 11,25) 감추시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이미 시작된 하늘 나라, 곧 치유와 자비,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낯선 일일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11,25), 곧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 켜켜이 쌓아 온 삶의 방식과 그에 따라 이미 몸에 밴 자기만의 논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철부지들”(11,25)이 그 세상과 가깝습니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받아들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해가 아니라 신뢰가 먼저 일어나는 자리, 그곳이 철부지의 자리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11,27). 이는 단순히 권력 선언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은 친교를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이에게만 열립니다. 25절에 나오는 ‘드러내다’는 그리스 말에서 ‘계시’의 동사형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대상은 “철부지들”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밝히 드러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거나 더 많이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은, 나아가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으로 가능합니다. 내 눈의 들보를 들어내 사람을, 세상을, 그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