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4일 일요일
[녹] 연중 제11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제자들이 할 일은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의 우리 삶을 있게 하신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19,2-6ㄱ
화답송시편 100(99),1-2.3.5(◎ 3ㄷ 참조)
제2독서
<아드님의 죽음으로 화해하게 되었다면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5,6-11
복음 환호송마르 1,15
복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을 보내셨다.>9,36-10,8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평화의 길을 찾는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교회가 스포츠를 통하여 문화 간, 국가 간 만남과 대화의 기회를 만들고, 존중과 연대와 인격 성숙과 같은 가치들을 증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2. 세계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세계 지도자들을 굽어보시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진실을 감추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세상 모든 이의 참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힘쓰게 하소서.
3. 이산가족과 북향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나라의 분단으로 고향을 떠나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진 이산가족과 북향민들을 보살피시어, 헤어짐의 아픔을 지닌 모든 이가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만남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살펴 주시어,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며 믿음 안에 하나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2 : 구원의 신비>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스스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변화를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하신 일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신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군중을 보시고”(마태 9,36)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시선이 언제나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5,1 참조). 이들은 고통과 질병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난 이들이며(4,24–25 참조), 시대와 사회의 상처가 만들어 낸 불의이고 불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9,36). 여기에 쓰인 그리스 말은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정도의 의미로, 다른 이의 처지를 자기 안에 끌고 와 그 고통과 불행에 함께하는 깊은 자비를 뜻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이 자비는 대개 인간의 육체적 어려움과 고통을 향합니다. 이는 곧 제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지 미리 밝힙니다. 교회의 첫 선포는 논리적 설명이나 사변적 논쟁이 아닌, 구체적 치유와 돌봄이었습니다.
군중의 처지를 묘사할 때, ‘시달리다’로 옮긴 그리스 말은 ‘가죽을 벗기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목자 없는 양”(민수 27,17; 참조: 에제 34장)의 심상과 연결되며, 마태오 복음사가가 유다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조용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목자의 자리, 곧 돌봄과 보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도와 율법, 그에 따른 심판만 남아 있지는 않은지 오늘 복음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구실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목자들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 9,37). 여기서 추수는 심판의 상징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종말론적 부르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 가는 이들이 예수님께 몰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종말이 다가왔음을 보여 줍니다. 내 삶의 한 조각으로 이웃의 조각난 삶을 이어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종말이고 구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