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7일 수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27(26),7.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갑자기 불 병거가 나타나더니,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2,1.6-14
화답송시편 31(30),20.21.24(◎ 25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4,23 참조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6,1-6.16-18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27(26),4
요한 17,11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경고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여기서 ‘의로움’은 단순히 도덕적인 품행을 뜻하지 않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의로움이 ‘하느님을 향한 길’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무대’로 어떻게 바뀌는지를 꿰뚫어 보십니다. 인간은 늘 인정 욕구에 목마르고 그 욕구를 채우고자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제법 있지요.
유다 사회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을 향한 경건한 삶을 가다듬어 왔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들도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고 끊임없이 가르치고는 하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선행이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될 때, 하늘의 상급은 사라지고 땅의 인정만 남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나팔을 불지 마라.”(6,2)라는 말씀은 과장이면서도 정확한 풍자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과장된 자기 연출의 유혹과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선자’는 그저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면을 쓰고 경건함과 올바름을 연기하는 사람이며, 종교 행위나 교회 제도로 자신의 삶과 명예를 챙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향하여 서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합니다. 기도는 회당의 중심이 아니라, 집 안 가장 깊은 방에서 홀로 시작됩니다. 단식은 인정받거나 혜택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며 삶에서 조용히 하느님을 찾는 행위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서 세상의 그 무엇이 그리 가치 있겠습니까. 사람과 세상 눈치를 보다가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결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