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6일 금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입당송 시편 28(27),8-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유다 백성은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갔다(25,21ㄴ).>25,1-12
화답송시편 137(136),1-2.3.4-5.6(◎ 6ㄴㄹ)
복음 환호송마태 8,17 참조
복음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8,1-4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45(144),15 참조
요한 10,11.1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 뒤에 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따르지만, 예수님의 눈길은 한 나병 환자에게 향합니다. 고대의 ‘나병’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질병의 수준에서 이해되지 않습니다. 레위기 13―14장이 서술하듯 나병 환자는 격리되고 소외되는 것을 참아야 하였고,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 존재 전체가 부정당하고 고립되어야 하였습니다.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다가와 절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 이 고백은 그저 치유를 바라는 요청이 아닐 것입니다.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다시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는 간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십니다. 그 접촉은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들 수 있었지요(레위 5,3 참조). 사회가 부정하다 여긴 그곳에 예수님께서는 과감히 함께하셨고, 부정이 전염되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에게서 깨끗함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위험이 아니라 회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율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도록 보내십니다. 이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산상 설교의 선언을(마태 5,17 참조)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8,4)라는 당부는 묘한 긴장을 남깁니다. 많은 군중 사이에서 예수님의 치유는 소문으로만 머물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인정과 용서와 화해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 됩니다. 마음을 열기보다 말만 앞세운다면 서로가 야속하게 여겨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