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7일 토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또는
[백]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28(27),8-9 참조
본기도
제1독서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2,2.10-14.18-19
화답송시편 74(73),1-2.3-4.5-7.20-21(◎ 19ㄴ)
복음 환호송마태 8,17 참조
복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8,5-1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45(144),15 참조
요한 10,11.1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카파르나움은 호숫가의 작은 도시였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 자유인과 노예로 나뉜 경계입니다. 그 한가운데 한 백인대장이 있습니다. 그는 제국의 질서를 따라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건네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주님, 제 종이 ……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마태 8,6). ‘종’이라고 옮긴 그리스 말 ‘파이스’는 노예 또는 아이를 가리킵니다. 이름 없이 불리는 존재, 그러나 누군가를 간절하게 만드는 인물. 백인대장은 그를 위하여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춥니다. 백인대장의 고백은 체면을 버리는 대신 한 사람의 고통을 멈추게 하려는 애원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에 놀라워하십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이가 와서 아브라함과 함께 잔칫상에 앉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세상의 신분과 권력과 명예가 갈라놓는 경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바깥 어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경계에서 안타깝게도 서로를 잊어버리는 이들, 그들의 어둠을 경고하십니다. 복음은 누구를 배제하기보다 우리가 ‘우리’로 서 있는지 조용히 묻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인의 손에 당신 손을 대셨고 그 부인은 일어났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 모든 장면을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로 감쌉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8,17).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멀리 밀어내시기보다 사랑으로 당신께서 기꺼이 짊어지십니다. 병의 무게가 누군가에게 홀로 남겨지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상처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