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8일 일요일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전야 미사
베드로 사도는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벳사이다 출신으로, 본이름은 시몬이다.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어부 생활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베드로(반석)로 바꾸시고, 그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복음서에 소개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여 칭찬받기도 하고, 예수님의 수난을 반대하다가 심한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로마 교구의 첫 주교며 첫 교황이기도 한 베드로 사도는 67년 무렵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열두 제자와 달리, 비교적 늦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열성적으로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서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들이 사는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곳 공동체들에 보낸 많은 서간이 오늘날 『성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67년 무렵 로마에서 참수되었다.
<이 미사는 6월 28일 저녁, 대축일 제1 저녁 기도 앞이나 뒤에 드린다.>
오늘 전례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된 베드로와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준 바오로는,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입니다. 우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증언합시다.
입당송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3,1-10
화답송시편 19(18),2-3.4-5ㄱㄴ(◎ 5ㄱ)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셨습니다.>1,11-20
복음 환호송요한 21,17 참조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21,15-19
예물 기도
감사송
<베드로와 바오로의 사명>영성체송 요한 21,15.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6.17) 세 차례에 걸친 예수님의 이 물음을 그리스 말로 보면, ‘사랑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가파오’와 ‘필레오’가 번갈아 나옵니다. 신학자들은 오래도록 그 동사들이 지닌 의미의 강약과 차이를 논해 왔지만, 요한 복음서는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낱말을 바꾸어 가며 표현하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사랑의 높낮이를 재는 대신, 다양한 표현이 되풀이되며 생기는 의미의 리듬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요. 세 차례의 물음은 세 차례의 부인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한 사람의 내면을 밝힙니다. 그것은 추궁하는 장면이 아니라 한 인격이 지난 기억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건너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21,16.17; 참조: 21,15). 우리말로는 모두 ‘돌보아라’로 옮겼지만, 그리스 말 성경에서는 ‘먹이다’라는 뜻의 동사도 쓰입니다. ‘먹이다’와 ‘돌보다’의 미묘한 차이는 목자의 책임을 여러 각도에서 비춥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시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현실에서 배불리 먹이고 챙기는 구체적 실천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그 실천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럼에도 오늘 복음의 끝은 결국 베드로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 그러나 늙어서는 ……”(21,18). 젊음은 자기 확신의 시간이고, 늙음은 자기 의지를 내려놓는 성숙한 사랑의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요한 복음서가 쓰였을 때 베드로는 이미 순교했지요. 그러니 이 예고는 사건의 예언이 아니라 모든 시간 속에서 사랑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를 되짚고 있습니다. 사랑은 끝내 우리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지만,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됩니다. 사랑은 나를 떠나 너와 하나 되는 일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