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1일 화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또는
[백]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 사제 학자
입당송 시편 54(53),6.8
본기도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7,14-15.18-20
화답송시편 85(84),2-4.5-6.7-8(◎ 8ㄱ)
복음 환호송요한 14,23 참조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12,46-5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11(110),4-5
묵시 3,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첫 부분에서는 공간의 대비가 눈에 띕니다. 예수님과 이야기하려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 있었다는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군중과 대화를 나누시던 곳은 어딘가의 ‘안’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무엇인가 전할 말이 있어 가까이 오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병행 구절을 살펴보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여(3,21 참조) 어떻게든 그분을 밖으로 데려가 설득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라고 반문하신 뒤,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바로 새로운 가족임을 밝히십니다. 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예수님께서 혈연관계를 매정하게 끊으셨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뒤에 나오는 핵심 내용을 강조하려는 수사학적 장치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더 넓은 의미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12,50)이야말로 참된 가족이라고 힘주어 밝히려 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밖에서 서성이는 당신의 친족들마저 그 새로운 가족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세례로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부릅니다. 이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우리가 실제로 영적인 가족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영예나 특권이기에 앞서 더할 수 없이 큰 책임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아파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교회 ‘안’으로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그들을 참된 형제요 자매로 받아들일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