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3일 목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또는
[백] 성녀 비르지타 수도자
입당송 시편 54(53),6.8
본기도
제1독서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2,1-3.7-8.12-13
화답송시편 36(35),6-7ㄱㄴ.8-9.10-11(◎ 10ㄱ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11,25 참조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13,10-1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11(110),4-5
묵시 3,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치실 때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속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궁금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의 답변은 비유의 본질과 목적을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지만, 이는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차별이나 불평등이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6,9-10 참조) 인용하시며 그 이유를 더욱 뚜렷하게 설명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마태 13,14-15). 핵심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의 태도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당시 유다인들에게 매우 낯설게 들렸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그들 안에 딱딱하게 자리 잡은 고정 관념이 더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벽을 뛰어넘으려면 그들에게 친숙한 삶의 소재로 말을 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사실 제자들도 스승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 하고 응답하였고, 단순한 마음으로 그분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비유는 진리를 숨기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완고하여 눈과 귀를 닫아 버린 이들에게 어떻게든 하늘 나라의 신비를 전하시고자 하였던 예수님의 간절하고도 능동적인 소통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