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31일 금요일
[백]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에스파냐 칸타브리아의 로욜라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느끼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여 오랫동안 총장직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 그레고리오 13세 교황께서 그를 시성하셨다.
입당송 필리 2,10-11
본기도
제1독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26,1-9
화답송시편 69(68),5.8-10.14(◎ 14ㄷ 참조)
복음 환호송1베드 1,25 참조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13,54-58
예물 기도
영성체송 루카 12,49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임철규 교수는 『눈의 역사 눈의 미학』에서 눈의 중요성만큼이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로 ‘눈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항상 이 ‘안다’는 부분에 속하지 않는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배제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보고 알게 된 것을 전부로 여기며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힐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그분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고향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족 관계나 과거를 속속들이 기억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이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자신들이 눈으로 본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일 뿐 도저히 알 수 없는 예수님의 신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13,57). 그 결과 그들은 기적을 누리지 못합니다. ‘앎’이라는 견고한 벽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려 은총의 통로를 막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때때로 눈을 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성적 판단과 경험적 지식이 주님의 은총을 가로막지 않도록 겸손히 눈을 감고 영혼의 눈을 떠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