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9일 토요일
[홍]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다. 이러한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마르 6,17-29 참조).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시작되었다.
입당송 시편 119(118),46-47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1,17-19
화답송시편 71(70),1-2.3과 4ㄱㄷ.5-6ㄱㄴ.15ㄴㄷ과 17(◎ 15ㄴㄷ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5,10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6,17-29
예물 기도
감사송
<선구자의 사명>영성체송 요한 3,27.30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주요 인물은 헤로데, 헤로디아, 헤로디아의 딸입니다. 권력 있는 사람 몇 명의 결정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집니다. 이 결정이 바로 실행된 데에는 헤로데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고관들, 무관들, 갈릴래아의 유지들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손님들”(마르 6,26)의 시선에 신경이 쓰여 곧바로 명령을 내렸고, 그들은 그 명령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침묵하고 방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헤로데와 헤로디아처럼 세례자 요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한 사람을 희생시켜 그들 사이의 친밀도와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힘 있는 이들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려고 서슴지 않고 힘 없는 이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며 그들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고는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세례자 요한처럼 그들에게 잘못한다고 말하면 그를 없애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침묵하고 방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권력자의 행동도 행동이지만 침묵하고 방관하는 이들의 태도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고민에 빠집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아님을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거나 불의인 줄 알면서 눈을 감아 버리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당신 생애를 통해 강조하신 정의와 공정,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향한 사랑이 아무 소용없다고, 그저 모른 척하며 살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은 눈앞의 이익만 보고 하느님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의 몸부림입니다. 침묵과 방관의 유혹을 벗어 버리고 세례자 요한처럼 의로움을 드러내는 예언자적 소명을 실현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