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1일 일요일
[백]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따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린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되어 609년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5월 13일이었는데, 9세기 중엽에 11월 1일로 바뀌었다. 교회는 이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우리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 사이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오늘 전례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성인들은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며 영원한 행복을 누립니다. 하늘 나라의 성인들을 기리며 전구를 청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굳게 믿는 우리도, 희망을 안고 성인들처럼 하느님을 뵐 그날까지 열심히 살아갑시다.
입당송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7,2-4.9-14
화답송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3,1-3
복음 환호송마태 11,28 참조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5,1-12ㄴ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교회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어, 세상 모든 이가 이기심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부를 올바로 사용하며, 언제나 공동선에 봉사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도록 이끌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평화를 바라면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계를 굽어보시어, 이해관계와 이익을 좇아 다투기보다, 대화로 갈등을 풀며 평화로이 살아가게 하소서.
3. 부부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 세상 부부들을 돌보아 주시어,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소중히 받아들이고, 주님의 일에 온마음으로 참여하는 주님 사랑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4.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도자이신 주님, 저희 교구(대리구, 수도회) 공동체를 굽어살피시어, 공동체가 주님만을 바라며 자신을 오롯이 바친 성인들을 본받아, 주님 뜻에 맞갖게 나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성인 감사송 3 : 우리의 어머니인 예루살렘의 영광>영성체송 마태 5,8-10
영성체 후 묵상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듣는 이에 따라 울림이 다른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산 이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한 이들입니다. 우리도 성인들처럼 살아가기로 굳게 다짐하며 성인들의 전구를 청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흔히 “지금 나는 행복한가?”라고 스스로 물을 때, 우리는 먼저 심리적 차원으로 접근하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지, 또는 지금 기분이 좋은 상태인지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좋은 기분은 분명 인간적으로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행복’이 무엇인지 새롭게 가르쳐 주십니다. 참행복이란 우리 눈길을 하느님께 돌릴 때 찾을 수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덕을 통하여 인간적 번영을 이룬 상태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행복이란 하느님을 소유함으로써(민수 18,20 참조) 완전해지는 상태라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만일 남들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은데, 하느님 나라가 약속되어 있지 않다면? 만일 남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데,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릴 수 없다면? 만일 지금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러운데, 하느님과 멀어져 있다면? 과연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난하고, 슬퍼하고, 박해받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그 까닭은 현재의 고통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행복한지를 물을 때, 현재 우리가 놓인 상태에 만족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리게 될 하느님 나라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행복은 현재의 내 감정 상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몫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에서 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