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8일 일요일
[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가 아닌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를 결성하고 이와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잔칫상에 앉는 합당한 준비로, 등잔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주님께서 오실 때에 서둘러 마중하여 혼인 잔치에 함께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입당송 시편 88(87),3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6,12-16
화답송시편 63(62),2.3-4.5-6.7-8(◎ 2ㄷ 참조)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4,13-18
4,13-14
복음 환호송마태 24,42.44 참조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25,1-13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목자이신 주님, 주님의 백성인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주님의 진리로 이끌어 주시고, 특히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들이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복음화에 힘쓰게 하소서.
2.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이 나라를 굽어살피시어,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만을 좇기보다 진리와 정의, 사랑의 참된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3.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자이신 주님,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들을 살펴 주시어, 몸소 위로하시고, 저희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눔을 실천하게 하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저희 가정 공동체를 주님의 은총으로 이끌어 주시어,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참행복과 생명의 가치를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영성체송 시편 23(22),1-2
루카 24,3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지혜서 저자는,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지혜의 기름으로 등을 밝히고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립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지속적으로 평신도들의 역할과 소명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시노달리타스’라는 용어와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 안에서 성직자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발맞추어 함께 나아가야 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노달리타스’라는 용어를 우리말로 옮긴 공식 단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를 ‘함께 살아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고 인간이 여기 존재한다는 것, 곧 ‘살아간다’는 말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보편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우리가 모두 함께 걸어가는 이 역사의 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려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이웃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헛된 똑똑함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말하고 서로 이야기를 잘 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1독서에서 말하듯 하느님의 지혜는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주기]”(지혜 6,16)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지는 않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까닭은 어쩌면 기름을 함께 준비하자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고, 깨어 있는 삶의 자세를 존중하지도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슬기로운 신앙인이 되고자 청해야 할 지혜는, 이웃의 모습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맞이하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요? 성령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겸손한 자세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