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7일 화요일
[백]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엘리사벳 성녀는 1207년 헝가리에서 공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는 남부럽지 않게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참회와 고행의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그는 남편이 전쟁에서 사망하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병원을 세워 직접 병자들을 돌보았다. 1231년 스물네 살에 선종한 그는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이자,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입당송 마태 25,34.36.40 참조
시편 112(111),9
본기도
제1독서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3,1-6.14-22
화답송시편 15(14),2-3ㄱ.3ㄴㄷ-4ㄱㄴ.5(◎ 묵시 3,21 참조)
복음 환호송1요한 4,10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10
예물 기도
영성체송 요한 15,13
요한 13,3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우리는 가끔씩 편을 가를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색깔을 가진 사람하고만 친해지려 하고, 성격도 맞지 않고 조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사람은 친교의 울타리 밖으로 손쉽게 밀어냅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른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과 자캐오는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 둘러싸여 계시고, 자캐오는 외면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자캐오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자캐오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어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자캐오 사이에 있는 견고한 경계를 허무십니다. 심지어 그의 집으로 들어가시지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까닭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약속을 되새기며 띄울 무지개는 하나의 색깔로 만들 수 없고, 하느님 나라의 거룩함을 노래하는 화음은 하나의 음표만으로는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신학 대전』에서 말한 것처럼 하느님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통하여 드러납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가 누군가와 가지게 된 경계를 허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계의 가시덤불을 걷어 내고, 하느님의 자녀라면, 나의 이웃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누군가의 집에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따듯하고 거룩한 모습을 닮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