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5월 12일 화요일
[백]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또는
[홍]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 순교자 또는
[홍] 성 판크라시오 순교자
입당송 묵시 19,5; 12,10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 공동체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고, 주님께 그들을 의탁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권력도 당신께 아무 권한이 없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14,19-28
화답송시편 145(144),10-11.12-13ㄱㄴ.21(◎ 12 참조)
복음 환호송루카 24,46.26 참조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14,27-31ㄱ
예물 기도
감사송
<부활 감사송 1 : 파스카의 신비>영성체송 로마 6,8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이따금 평화를 잔잔한 호수의 평온함에 빗대어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소란한 빗줄기를 ‘평화’라는 말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잔잔한 호수를 떠올리며 예수님의 평화를 묵상해 보자니, 예수님께서 평화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자리가 꽤나 불편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상을 떠나시는 당신 수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고 계십니다. 스승을 따르며 한생을 내어 맡긴 제자들은 잔잔한 호수의 평화는커녕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만한데, 평화라니요?
예수님께서는 분명 세상의 평화와 다른 ‘당신의 평화’를 주시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평화라면 무리 없이 받아들일 테지만, 세상과 다른 평화라면 도대체 어떤 평화일까요?
예수님의 평화는 무엇보다 마음의 산란함과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무엇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이 산란하고 두려움에 휩싸일까?’ 되물어 봅니다. 스스로 챙겨야 할 몫과 예수님을 통하여 꿈꾸어 온 영광의 시간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제자들은 불안한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수난의 길이 너무나 힘겨울 것 같아 연민의 정으로 제자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요?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 낸 자리에 예수님의 평화는 기쁨의 자리로 다시 정리됩니다. 기쁨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만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챙겨야 할 몫도, 우리 각자가 지향하는 영광의 시간이나 명예로운 순간도 아닌, 그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쁨을 위하여 수난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우리가 두려운 이유는, 스쳐 지나듯 사라지는 것들에 우리의 영혼마저 빼앗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님을 만나 평화로워지려면 우리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잠시 만족할 것들에 사로잡혀 진정 나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저마다 자유로운 삶의 회복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