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또는
[백]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영이 그들 안에 사시기만 하면, 그들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하시며,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8,1-11
화답송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복음 환호송에제 33,11 참조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13,1-9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참조
마르 10,4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은 ‘행위와 결과’, ‘인과응보’, ‘상선벌악’이라는 분명하고 명확한, 그래서 기계론적이기까지 한 신앙의 논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면 ‘상’과 ‘복’을 받지만, 그러지 않으면 ‘벌’과 ‘저주’를 받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잃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는 등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들을 죄의 결과로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빌라도의 손에 죽은 사람들, 실로암의 탑에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이 유다인의 눈에는 죄의 결과로만 비쳤을 뿐입니다. 나아가 죽지 않은 자신들이 그들보다 의롭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행위와 결과’라는 도식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려는 유다인들에게 두 번이나 같은 표현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청중의 의로움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죄를 많이 지었는지, 죄의 대가로 벌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모든 종류의 죄에서 돌아서는 것, 곧 회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일까요? 먼저 지금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특별히 큰 죄는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느님을 잊고 살아가는 것, 하느님 말씀보다 세상이 주는 달콤한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것,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시간을 보내면서 하느님의 이름은 잊고 살아가는 것 ……,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에서 하느님을 조금씩 밀어내는 행동들이 죄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과 귀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동안 하느님을 향하며 살아가지 못하였다면, 우리의 마음에 조금씩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 그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