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2월 14일 월요일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튀르키예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두 형제는 후대에 ‘키릴’ 문자로 불리는 글자를 만들어 전례문들을 슬라브 말로 옮겼고,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로마로 돌아간 다음,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하였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가 벨레라드에서 885년 무렵 선종하였다.
입당송
본기도
말씀의 초대
야고보는 시련에 굴하지 말고 인내로 이겨 내며,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지혜를 청하라고 한다(제1독서). 바리사이들의 불신앙에 실망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세대가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1,1-11
화답송시편 119(118),67.68.71.72.75.76(◎ 77ㄱ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4,6 참조
복음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8,11-13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르 16,20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시련은 누구에게나 어떠한 형태로든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질병의 고통으로, 누군가에게는 불의의 사고로 자녀를 잃은 비통함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랜 기간 공들인 수고와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허탈함으로, 어떤 이에게는 헌신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된 상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시련이 왜 하필 나에게 다가온 것인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하느님께 따져 보기도 하지만, 그분께서는 침묵 속에서 우리를 방관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시던 예수님에게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하느님처럼 말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그런데 오늘 제1독서는 이러한 시련을 두고 우리의 믿음이 ‘시험’에 놓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단련시키시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그 자녀들 가운데 으뜸이신 예수님께서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모진 시련을 겪으셨습니다. 승리자의 위풍당당함이 아닌 패배자의 무력한 모습을 선택하신 메시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참으로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그 거룩한 인내는 마침내 부활이라는 완전한 결실로 이어지고, 온 인류는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혹독한 수난에도 끝까지 인내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에게 다가온 시련에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맞서 강한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 제자들이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