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30일 토요일
[녹]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또는
[백]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학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68(67),6-7.36 참조
본기도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는 자신을 사형에 처하려는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한다(제1독서). 헤로데 영주는 생일에 아내 헤로디아의 딸이 청한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선물로 준다(복음).
제1독서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26,11-16.24
화답송시편 69(68),15-16.30-31.33-34(◎ 14 참조)
복음 환호송마태 5,10
복음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14,1-12
예물 기도
영성체송 시편 103(102),2
마태 5,7-8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허망하고 충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마태 11,11 참조)이라고 하신 이의 죽음에서 어떠한 영웅적인 모습이 보이지도, 하느님의 극적인 개입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저 ‘힘 있는 자들’이 벌인 잔치의 ‘눈요깃감’에 지나지 않는 허무한 죽음으로 지상에서 요한의 삶은 끝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의 죽음에서 불사불멸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세상 권력과의 거창한 투쟁 끝에 장렬한 죽음을 맞기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와 예언자,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에서조차 우리가 찾는 특별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정의와 평화, 진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목숨은 오히려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의 구원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어쩌면 가장 없애 버리고 싶은 목숨, 가장 하찮게 여기는 목숨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복음의 핵심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그에 따르는 비통함이 아닙니다. 악이 하느님의 사람을 죽이지만, 악의 힘으로는 하느님의 사람도, 하느님의 나라도 결코 끝낼 수 없다는 희망을 선포하는 데에 있습니다. 악에 의해서 결코 끝나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체험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