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8월 21일 일요일
[녹] 연중 제21주일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1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의 좁은 문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새로운 생명의 파스카 잔치로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힘을 주시어 아드님의 제사에 우리를 결합시키시고, 아버지 나라의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입당송 시편 86(85),1-3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에게서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며 시련을 견디어 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시며,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데려 오리라.>66,18-21
화답송시편 117(116),1.2ㄱㄴ(◎ 마르 16,15 참조)
제2독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12,5-7.11-13
복음 환호송요한 14,6 참조
복음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13,22-30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민족들의 주님,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둘러앉은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성찬으로 힘을 얻고 모든 민족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을 전하러 나가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의로우신 주님, 공직자들에게 주님을 두려워하고 국민을 섬기는 마음을 심어 주시어, 비리와 부정의 유혹을 떨쳐 내고 언제나 정직하고 청렴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오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더위 속에 더 큰 고통을 겪는 가난한 병자들을 찾아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게 하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참사랑이신 주님, 저희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시어, 주님께서 주시는 시련을 기꺼이 견디어 내게 하시고, 주님을 찬양하며 구원의 문으로 들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8 : 삼위의 일치와 교회의 일치>영성체송 시편 104(103),13-15 참조
요한 6,54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며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보통 마태오 복음은 엄격하고, 루카 복음은 부드럽고 따뜻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루카 복음도 엄중하고 강한 경고의 말씀을 전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여간해서는 지나갈 수 없는 좁은 문이 나옵니다. 심지어 그 문은 닫힐 것이라고 합니다. 닫힌 문 앞에서 사람들이 집주인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외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어떤 사람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에 숫자로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날 많은 유사 종교와 사이비 종교가 숫자 놀음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 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의 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부단히 애써야 한다고 하십니다.
구원받기 위한 첫째 조건은 ‘싸우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 가끔 등장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싸웁니다]”(1코린 9,25).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애써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내면과 외면의 힘겨운 싸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의 그릇된 논리와 유혹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는 치열한 싸움입니다. 둘째 조건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낮아지고 작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춘 사람은 자신이 약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호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도 스스로 구원을 자신해서는 안 됩니다. 세례를 받고 교리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꾸준히 미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구원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비유 말씀을 보면,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 자기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다는 항변에도 주인은 그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기며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면서도, 자신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낙관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자신이 고백하는 믿음과 전혀 다른 삶을 살면서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