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03일 월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입당송 에스 4,17②-③ 참조
본기도
제1독서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1,6-12
화답송시편 111(110),1ㄴㄷㄹ-2.7-8.9와 10ㄷ(◎ 5ㄴ 참조)
복음 환호송요한 13,34 참조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10,25-37
예물 기도
영성체송 애가 3,25
1코린 10,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핵심 단어는 ‘이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계명이 바로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루카 저자는 다른 공관 복음 저자들과(마르 12,28-34; 마태 22,34-40 참조) 달리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계명으로 함께 제시하면서 이웃 사랑이 결코 하느님 사랑과 떨어질 수 없는, 같은 효력을 발휘하는 계명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던 율법 교사는 이웃 사랑의 주제를 이어 나가며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그 사람이 바로 우리가 도와야 할 이웃입니다. 그리고 기름과 포도주, 노새, 여비 등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 사마리아인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탁월한 본보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 율법 교사의 질문이었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질문하십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이는 이웃에 대한 율법 교사의 생각을 바꾸게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를 고르고 선별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쓰는 ‘나’ 중심의 사고에서, 내가 직접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 주겠다는 ‘상대방’ 중심의 사고로 전환한 것입니다. 곧 내가 정해 놓은 ‘이웃’의 범주에 누군가 자격이 되어 들어오면 그제야 사랑을 베풀겠다는 소극적 태도에서, 나 자신이 먼저 발 벗고 나서서 누구든 그의 이웃이 되어 주겠다는 적극적 태도로 변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내 이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인색한 사랑이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는 사랑,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이며 당신께서 몸소 십자가 죽음으로써 보여 주신 진정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