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04일 화요일
[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프란치스코 성인은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기사의 꿈을 안고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된 그는 아버지가 낸 보석금으로 풀려난 뒤에도 예전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1204년 중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회복된 그는 청년 시절의 해이한 생활에서 돌아서서 아버지의 재산을 포기하고 하느님께 굳게 매달렸다. 가난을 받아들이고 복음적 생활을 하면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그에게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그들과 함께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세우고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였다. 그는 1224년 무렵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받았는데, 그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226년 선종한 그를 2년 뒤 그레고리오 9세 교황께서 시성하시고,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셨다.
입당송
본기도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1,13-24
화답송시편 139(138),1-3.13-14ㄱㄴ.14ㄷ-15(◎ 24ㄴ 참조)
복음 환호송루카 11,28 참조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10,38-42
예물 기도
영성체송 마태 5,3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자매 가운데 누가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보이십니까?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칭송을 받지만, 사실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은 그녀의 언니 마르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마르타가 겪는 마음의 동요와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여기서 ‘분주함’이란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움직인다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뿐만 아니라, 마음이 흩어지고 어지러운 상태도 포함합니다. 사실 마르타도 예수님 말씀을 듣고 싶어서 그분을 집에 초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귀한 손님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해야만 하였고, 마르타가 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면, 마리아는 그저 예수님 발치에 앉아 속 편하게 말씀을 듣고 있는 철없는 동생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언니 입장에서 화가 날 법도 합니다. 참다못한 마르타는 동생이 자신을 거들게 해 주십사 예수님께 청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언니가 동생에게 직접 하는 것이 옳습니다. 집에 온 손님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큰 결례이지요. 그러나 마음이 복잡해진 마르타는 그런 요청이 실례가 되는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초대되신 예수님께서 사소한 집안싸움의 중재자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질투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전형을 비추기도 합니다. 마르타는 그분 말씀이 듣고 싶어서 예수님을 집에 초대하였지만, 나중에 가서는 동생이 말씀을 들을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그런 옹졸함이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누리지 못할 바에는 남도 누리지 못하길 바라는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