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6일 일요일
[녹] 연중 제29주일
오늘 전례
▦ 우리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줄곧 조르는 과부의 비유를 드시며,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주는 성경을 읽읍시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선포하기로 다짐합시다.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본기도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우세하였다.>17,8-13
화답송시편 121(120),1-2.3-4.5-6.7-8(◎ 2 참조)
제2독서
<하느님의 사람은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됩니다.>3,14─4,2
복음 환호송히브 4,12 참조
복음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을 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18,1-8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희망이신 주님,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성령의 은총을 내려 주시어, 세상살이의 희로애락 속에서도 언제나 주님의 진리와 정의를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며 참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분단의 세월과 세계 정치 흐름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희 겨레를 살펴 주시어, 남북한이 적대적인 경쟁을 멈추고 신뢰를 회복하여 경제 협력과 교류를 이루며, 온전한 평화로 나아가게 하소서.
3. 장애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자이신 주님,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고, 몸소 위로하시며 굳셈의 은총을 주시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가게 하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주님 안에서 한마음으로 하나 되어 살아가는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이끌어 주시어, 주님의 빛으로 가정과 이웃과 사회를 밝히는 거울이 되게 하소서.
예물 기도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영성체송 시편 33(32),18-19 참조
마르 10,45 참조
영성체 후 묵상
▦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부르짖으며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 모세가 팔을 벌리고 바친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 백성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려고 모인 당신 백성을 굽어보시어, 새로운 백성이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며, 세상을 위협하는 악을 이기게 하십니다. 또한 주님께 밤낮으로 부르짖는 이들을 의롭게 해 주십니다.
영성체 후 기도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 과연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계시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응답도 없는데 계속 기도해야 할까? 그냥 포기해 버릴까?’ 하는 유혹이 생기기도 합니다. 망설이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를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십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야말로 ‘불의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의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 반전의 계기가 생깁니다. 그 고을에 사는 과부 한 사람이 재판관을 자주 찾아와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달라고 끈질기게 졸랐던 모양입니다. 재판관은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주기로 결심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녀에 대한 동정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신을 너무 귀찮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가 끝까지 찾아와 자신을 ‘괴롭힐’ 것이 뻔하였습니다. 여기서 ‘괴롭히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휘포피아조’는 본래 ‘눈 아래를 치다’ 또는 ‘얼굴을 때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격투 용어입니다. 과부의 끈질긴 청이 마치 재판관의 눈을 시퍼렇게 만들 정도의 심한 괴롭힘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향하는 논증을 펼치십니다.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임에도 과부의 끈질긴 청에 결국 항복하고 들어줍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과연 어떠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단언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기도를 허투루 듣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들어주시리라는 강한 믿음과 함께, 주님을 계속 귀찮게 하고 괴롭혀 드려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