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2월 15일 수요일

[녹]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31(30),3-4 참조

하느님,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본기도 

하느님,
바르고 진실한 마음 안에 머무르시겠다고 하셨으니
저희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리시어
하느님의 마땅한 거처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8,6-13.20-22
6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8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2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22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16(114─115),12-13.14-15.18-19ㄱㄴ(◎ 17ㄱ 참조)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의 집 앞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

복음 환호송에페 1,17-18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알렐루야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이 제사로 저희를 깨끗하고 새롭게 하시어
저희가 주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78(77),29-30 참조

그들은 실컷 먹고 배불렀네. 주님이 그들의 바람을 채워 주셨네. 그들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으셨네.
<또는>
요한 3,16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진미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참생명을 주는 이 양식을 언제나 갈망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떤 눈먼 이의 치유는 어제 복음에서 볼 수 있었던 제자들의 소경성을(마르 8,16-17 참조)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자주 눈의 상징을 활용합니다. 우리가 후회되는 일을 하고는 “내가 그때 눈이 멀었었어.”라고 말합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인생사를 보려 하지 않는 것은 구원에 큰 장애가 됩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세례 받은 사람을 ‘빛을 받은 이’로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뎌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히브 10,32). 또 신앙의 눈으로 올바로 보는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행복 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이 세상을 살아가며 좋다고 하는 것들 사이에서 참으로 값진 보물을 구별해 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속이고 기만하는 것을 만나 세상살이가 두렵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눈처럼 겉모습 너머를 보는 눈, 참생명을 위하여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선택은 늘 눈에서, 곧 욕망으로 가려진 눈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창세 3,6 참조).
오늘 복음은 우리의 치유를 위한 많은 가르침을 주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두 번 나오는 “마을”이란 말에 조금 더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실 때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라는 말씀과, 시력이 회복된 이에게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올바로 보고 신앙의 눈을 뜨고 살아가려면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루기를 바라시는 새로운 탈출의 여정을 뜻합니다(예레 31,31-32 참조).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치유된 이를 “집으로” 보내시며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집으로 보내시면서 그가 살아갈 마을로는 가지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저 마을”이란 그리스도의 빛과 복음의 빛으로 보지 않고 세상의 기준과 자기 통념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그 모든 곳이 아닐까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은총을 다시 한번 주님께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