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22일 수요일
[자]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입당송 시편 69(68),14
본기도
제1독서
<땅을 다시 일으키려고 내가 너를 백성을 위한 계약으로 삼았다.>49,8-15
화답송시편 145(144),8-9.13ㄷㄹ-14.17-18(◎ 8ㄱ)
복음 환호송요한 11,25.26 참조
복음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5,17-30
예물 기도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영성체송 요한 3,17 참조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오늘의 묵상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벳자타 못에서 병자를 치유하신 이야기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합니다. 이미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먹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죽이려고 합니다. 복음의 표현은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실 때 공개적으로 제시되었던 죄목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요한 19,7).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신 표징도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일부 유다인들의 시각에서 예수님은 신을 모독하고, 자신을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만든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의 표징이지만 그 사건의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빛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이들에게 그분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분의 업적이 하느님에 대한 불경처럼 보입니다. 요한 복음은 이렇게 상반된 시각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결단하게 합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은 어떤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받아들일지 선택해야 합니다.